한글은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수 없는 과학적인 글이요,
세계
가 부러워하는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더
욱더 아끼고 가꿔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독자칼럼] 한자이름의 창피한 기억/박승규/경북대 강사
  13년전 한국에 온 네팔 카투만두대학의 한 교수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생긴일이다. 당시 나는 습관적으로 이름을 한자로 적어주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왜 한국 사람이면서 중국의 글자로 이름을 썼느냐고 반문하는것이었다. 전혀 얘기치 않은 상황에 매우 당황해, 우리나라는 중국의 옆에 있기 때문에 그동안 중국의 글자를 많이 사용해왔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나라도 중국과 국경을 같이 하고 있지만 중국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도 한글을 조금 읽을수 있는데 왜 당신은 한글로 쓰지않느냐고 다시 반문하였다. 그때 정말 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전무후무하게 창피를 당했다. 그의 주장은 한국 사람이 아무리 중국 글자로 이름을 표기하더라도 중국식 발음은 한국 사람의 발음과 다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유명사인 이름을 중국글자로 표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뒤 '왜 내가 내 이름을 중국 글자로 썼을까'하는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다. 정체성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긴 시간동안 온갖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논리싸움을 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다시는 중국 글자로 이름을 쓰지 않겠다고. 그날 이후 다시는 중국글자로 이름을 쓰지 않았다. 다른 분야에서 중국 글자를 사용했을 경우에는 부득이한 조건아래에서만 외국의 글자라는 전제 아래 사용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러한 선택에서 아무런 불편함도 못 느꼈다.

이글은 1999. 3. 3 (수) 일자 한겨레신문 경북대 박승규 강사님께서 기고한 글을 옮긴것입니다.
   
한글은 21세기형 문자
 

한글창제 당시의 자모를 조합하면 무려 18억 14만 9600자가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은 없어진 자모 4자와 외래어(중국어) 표기용 6자 등을 합해 초-중-종성까지 고려해 조합을 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이다. 그러나 1933년 맞춤법 통일아에 이르러 24자로 줄어들고 마디글자(음절)는 11,172자로 축소되었으며 1985년 전산용 완성형 부호계(코드) 는 2,350자까지 축소되었다. 다시 1997년에는 유니코드를 활용할 경우 23,500자로 확대되었으며 극히 최근 어느 글편기(글월편집기,워드 프로세서)는 한글 50만자 수준의 마디글자가 생성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많은 글자 수는 비경제적이었다. 한글의 역사가 축소지향의 역사가 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컴퓨터 시대가 도래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모아쓰기를 자동으로 터득할 수 있는 지능기계(전산기) 덕분에 한글 자모만을 입력 시켜도 마디글자를 자동적으로 토해 놓을수 가 있게 된것이다. 이는 촘스키가 말하는 생성틀이나 튜링의 지능 생성틀 구조와 아주 일치하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무려 500년이나 앞서 이 이론을 한글 창제를 통해 실현했다. 이 때문에 한글은 컴퓨터를 염두에 두고 창제했을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이다. 구체적 사례로 로마자 공세에 살아 남은 글편기는 오직 한국뿐이며 셈틀(PC) 보급률(대수가 아닌) 면에서 일본을 앞지르는 것 또한 이러한 구조적 특징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수가 많으면 쓰일 곳도 많은 법. 글이 없어 말(언어)까지 죽어가는 3,500여개의 소수민족들에게 글을 만들어 주는 일이나, 10억으로 추산 되는 글소경사람(문맹인)들을 일깨워 주거나, 에스페란토 말을 글로 적을 때는 무엇보다도 한글 음성문자가 제격이다. 이를 확대 적용한다면 일본이나 중국과 같이 한자말을 컴퓨터로 입력시키기가 곤란한 문자들을 위해서 한글은 소리기호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절대자와 교신 한다고 주장하는 방언형태의 읊조림, 굿거리 말(사설), 주문, 음성 신호등을 정확히 적어 놓은 일, 칼 세이건이 고안하여 파이어니어호에 탑재했던 시늉말(제스처)로된 외계인과의 교신 엽서글 등은 모두 한글로 적어야 제뜻을 나타낼 수 있다. 물론 다른 글로도 적어놓을 수 있겠 으나 말과 글이 서로 달라 사맛치 못할 것이다. 특히 외계인과 교신할 때는 지금 쓰지 않는 한글 마디글자가 소용되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 이다. 이는 한글이 우주(하늘)와 자연(땅)과 인간(사람)들이 니르고저하는 소망을 표기하기 위하여 창제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과거기록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으나 미래를 창조하는 문자는 아니다. 로마자는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다. 한글은 보편성과 개방성 성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세계인 누구라도 컴퓨터와 인터넷에 손쉽게 시려 펼 수가 있기 때문에 세 번째 천년은 한글의 세기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오늘은 세종 탄신 602돌이며 스승의 날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을 기리기 위해 한글을 세계화, 우주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이글은 1999년 5월 15일 (토) 일자 조선일보 경희대 전자정보공학부/국어정보학회장 교수님께서 연재한 글을 옮긴것입니다.

   
한자는 장애물이다.
  어문정책은 한 나라의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것이다. 말과 글을 통하지 않고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마비된다. 이런 맥락에서 어문정책의 변경은 헌법의 개정보다 더 신중히 해야 할것이다. 대부분 중국어에서 유래된 한자어를 적기 위해 한자를 한글과 병용하자는 주장은 마치 영어에서 유래된 단어를 쓸때 영어를 괄호안에 넣어서 '스포츠(Sports)'처럼 쓰자는 주장과 같다. 한자병용주장은 그 실용성과 효율성에서 한글만을 사용하는 표기방법과 비교할 때 아흔아홉의 유익을 버리고 단 하나의 유익만을 얻겠다고 하는것과 같다고 하겠다. 먼저 한자병용과 한자교육에 의해 우리 민족만을 전통을 계승을 꾀하자는 주장은 일부 지식층이 그 직무를 유기하겠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국민이 역사와 고전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 그 원전을 쉬운 글로 풀어 적는 일은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몫이다. 이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일은 국가적으로 많은 비효율 문제를 초래한다. 대중은 그들의 문자생활에 대한 책임과 권리가 있다. 누구나 자신의 글을 다른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어야 할 책임이 있다면, 대중은 또한 이해하기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 글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이러한 국민적 권리를 어문정책 담당자가 좌지 우지할 수 없다. 한자를 좀 알고 한자 섞인 글을 읽는다고 수준높은 문화를 누린다는 착각을 경계해야 한다. 한글세대가 이제 겨우 형성됐다. 이들 세대의 문화가 한자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저급하다고 할수 없다. 지금의 소위 '한글세대'는 한글로 이루어지는 문화의 풍요를 그 어느 세대들보다 마음껏 더 많이 누리고 있다. 일반서적, 신문과 잡지뿐만 아니라 전문서적에서 도 한자는 거의 사라졌다. 이들에게 한자의 굴레를 씌워 문화의 풍요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한자병용 주장에는 소위 '한자문화권' 이라는 허구가 전제된다. 한자문화권이라는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확인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현대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사용되는 한자는 한국, 중국, 일본등의 국가에서 서로 다른 모양과 의미로 , 그리고 서로 다른 발음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한자병용으로 도로표지판 등의 안내홍보문을 만든다 할지라도 그 발음과 모양이 다르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자를 병용할 때 모호한 뜻을 피하고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비유하자면 말로 대화하며 의사소통을 할때에도 한자책을 들고 다니면서 보여줘야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아. 우리 민족의 문화는 이제 국제적으로 인식돼 가고 있다. 최근 10여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놀랄만큼 늘었다. 외국의 많은 교육기관에서 한국어 교사를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국인에게 한글의 문자체계와 글 읽는 법을 가르치는 데는 몇시간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외국인이 한국어 문헌을 이해하기위해 한자를 배워야 한다면 대부분 포기하고 말것이다. 지구촌 시대에 한국문화의 국제화에 요구되는 정보교환과 문서 자동처리에 한자병용은 큰 걸림돌이 된다. 한자사용이 문서 정보화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되고 있는가. 웬만한 한자가 컴퓨터에 입력돼 있다고는 하나 한자를 병용하려면 일일이 그것을 찾아서 써줘야 하는 추가부담이 생기지 않겠는가. 앞으로 국제적으로 정보처리의 속도경쟁이 가속 될 것이 분명한 이시대에 튀어나온 한자병용 주장은 더 이상 논의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제나라 말을 고유한 글로 적을 수 있는 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대개는 수천년이상의 세월에 걸쳐 형성된 타문화의 문자체계(로마문자, 희랍문자, 아랍문자 등)를 빌려쓰고 있다. 우리 민족은 고유의 문자체계를 가지고 있는 몇 단되는 민족중 하나이며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은 학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은 이러한 한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한글모양을 다양화하며 효율적인 한글전산처리를 위한 기술개발이 시급한 시기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진행되던 어문정책의 방향타를 왜 과거, 후퇴, 답보쪽으로 돌리려 하는가. 정부는 구상을 당장 거두어야 한다.

이글은 1999년 2월 13일 (토) 일자 중앙일보 서울대 언어학과 남승호 교수님께서 연재한 글을 옮긴것입니다.
   
우리글을 애용하자.
 

한글전용론과 한자혼용론은 세종탄신 6백돌, 한글날 5백 51돌이 되는 지금까지 평행선을 달리며 논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금은 한자혼용론이 더 우세한쪽으로 변하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한자혼용론자들의 주장을 보면 한자를 쓰지 않으면 낱말의 의미파악이 어렵고, 한자문화권이 부상하기 때문에 한자혼용은 필수적 이라고 한다. 그러나 낱말의 참뜻은 문장의 문맥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따로 단어만 존재할때는 무슨 뜻일까 아리송해도 문장에서 쓰인 것을 보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된다. 한글로만 쓴 문장을 이해할 수 없는것은 한자로 써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의 한글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순한글을 쓰는 신문을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것이다. 한글전용이지만 내용전달이나 의미 파악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뿐만 아니라 가독성이 뛰어나서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또 요즘 대학생 들의 한자 무식을 거론하며 한자사용문화권과의 경제협력 때문에라도 한자혼용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한자가 생겨난 중국에서조차 한자가 너무 많고 어려워서 새로 약자를 만들어 실용한자를 정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자문화권과의 교류를 위해서는 한자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에 한해서 전문교육을 시켜 활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말과 글은 민족의 얼이며 정신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우리말과 글을 못쓰게 하고 창씨 개명이나 일본어 학습을 강요한것은 우리민족의 얼과 정신을 말살하기 위함이었고, 우리의 선각자들이 목숨을 걸고 우리말과 글을 지켜온것은 민족의 얼과 정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것이었음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1997년 10월 8일자 세계일보 이동수(한글사랑모임대표)님의 글을 옮긴것입니다.

   
한자의 무용론
 

글자라 함은 말소리를 모양으로 나타내어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글자는 정보를 보다 빠르게 만들어서 전달하고 쉽 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므로 익히기 쉽고 쓰기 쉽고 읽기 쉬워야 한다. 하지만 한자라는 것은 한글보다 훨씬 익히기가 어렵고 쓰는것도 쉽지 않으며 읽기 또한 상당히 어렵다. 한글의 경우에는 조합원리만 이해하면 어떤 글자도 소리내어 읽을수 있지만, 한자는 아무리 많은 한자를 알고 있어도 자신이 전에 보지 못한 한자를 접했을때는 뜻은 물론이고 읽을 수 조차 없다. 즉, 어떤 말소리를 기록한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또 대부분의 한자가 한글보다 획수가 많기 때문에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한글은 몇 개의 자음-모음을 조합하여 글자를 쓰기 때문에 손에 쉽게 익혀 빨리 쓸수 있지만, 한자는 이렇게 할 수가 없고, 특히 키보드를 통한 입력에 있어서는 한자는 한글에 비해 가히 환상적으로 입력속도 가 느려진다. 이와같이 한자는 정보전달 도구로 써 볼 때 거의 모든면에서 한글보다 뒤떨어진 글자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 한자로 쓰면 다음과 같은 장점은 있을수 있다. 우리나라 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말을 한글로 표시하는것보다 한자로 표현하는 것이 각 글자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표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는 어원분석이나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 의미를 추정해 보는데 도움을 주는것일 뿐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즉, '대한민국'라는 말은 그 말 전체가 하나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이지, 큰 대, 한나라 한, 백성 민, 나라 국자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 대한민국을 이해하는데는 거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 정보의 홍수라 불리울만큼 엄청난 양의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정보들중에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뽑아낼수 있는 능력이 중시되는 요즘에 멀티미디어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문자로만 된 정보보다 소리나 화상, 동화상들을 동원하여 표현하는 정보가 사람에게 보다 더 빨리 정보를 인식하고 습득할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때에 같은 글자중 에서도 정보전달력이 더욱 떨어지는 한자를 즐겨쓰고 한자로 쓰는 것을 좋아하며, 한자로 글씨를 쓰면서 우월감을 갖는 사람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글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윤준삼이 갖고 있습니다

   
한글날은 다시 공휴일로 지정되어야 한다.
 

저는 세종대왕님께서 만드신 우리글인 한글을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모든 일상생활에서 한자를 전혀 쓰지않고, 한글만을 쓰는 시대가 반드시 오리라고 믿고 있으며, 꼭 그렇게 되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때 비행기를 날틀이라고 쓰자고 했던것처럼 그런식의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글도 아닌 중국의 한자를 쓰지 말자는것 뿐입니다. 많은 사람은 우리말의 근원이 대부분 한자로 되어있어서 한자를 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대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되는 진부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충분히 한글만 사용해서도 말글을 얼마든지 표현할수있습니다. 근래 많은 신문들이 가로쓰기, 한글만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한글전용은 시대적인 요청이요, 대세라고도 볼수 있을것입니다. 지금은 정보화시대입니다. 한자, 그것은 정보화로가는데있어서 심각한 걸림돌일 뿐입니다. 세종대왕님께서는 한글을 처음 만드실때에 미리 컴퓨터시대가 올걸로 예측하고 우리글, 한글을 창조하셨습니다. 세계적인 조직인 유네스코에서 매년 그 해에 문맹퇴치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킹세종상을 준다는것을 알고있는분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낮은 이유는 바로 다름아닌 한글때문입니다. 10억이나 되는 중국인의 태반은 문맹이라고 합니다. 바로 한자때문이죠. 오래전에 중국의 어떤 유명한 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망한다" 그 말은 무엇을 뜻하는걸까요? 바로 한자의 무용성 을 말합니다. 세계화, 세계화라고 해서 어떤분들은 동남아시아는 한자문화권이기때문에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한자를 많이 쓰고, 국민학교때부터 한자를 가르쳐야한다고 부르짖습니다. 대체 그 사람은 어느나라 사람입니까? 참 한심하기 짝이없는 말입니다. 동남아시아가 한자문화권이라고 하는데, 그건 일부 화교를 일컷는 말일뿐입니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영어가 공용어입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마찬가지입니다. 세계화를 부르짖고자 하신다면 잘못된 영어교육부터 정상화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부턴까 10월 9일 한글날이 달력에서 공휴일에서 제외 되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날을 우리는 공휴일에서 제외시켰으니 세종대왕님이 지하에서 분노하실 일입니다. 그냥 1년에 한번 한글날을 형식적으로 기념하는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맘속에 한글에 대한 고마움과 그 의미를 되새겨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한글애호인인 강줄기가 쓴글입니다.

   
한문글자를 함께 쓸 수 없는 까닦..김정섭( 우리말 우리 얼 운영위원)
 
우리 말글과 세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