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글과 세계화
-영어바람에 부침-

최인호(한겨레신문사 교열부장)

들머리

20세기말에 들어 동양을 대표할 만한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에서 문화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는 한세기 전에 있었던 일본, 청, 조선이 겪던 개방혼란을 넘어선 상태여서 세 나라 두루 심각하게 현실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특히 우리 말글살이쪽으로 좁혀 이를 살펴보고,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짚어볼까 한다.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 개인자문기구인 `21세기 일본의 구상'이란 모임에서 일본이 영어를 제2공용어로 채택할 것을 검토하자는 제안을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97년 복거일이란 소설가이자 경제학자가 불쑥 주장한 뒤 잦아들었다가 2000년 1월18일 일본쪽 얘기가 보도되자 사뭇 덩달아 신문, 방송 따위에서 이를 부추긴 바 있다. 중국에서는 간체자에다 주음부호나 로마자를 달아 읽고 있는데다, 영어와 주술관계가 비슷하여 영어 익히기에 큰 어려움이 없고 보면, 영어화 추세가 일본, 한국보다 더 당겨질 수도 있을 듯싶다. 이를 일컬어 한자 천년의 시대가 가고, 영어 천년왕국이 왔다(김주성 한글문화연대 부대표)고 하는데, 우리는 비록 한자를 버렸지만, 한자 나라였던 중국쪽이나 다른 이웃들의 어문변화 됨됨이를 지켜보지 않을 수 없겠다. 일본과 중국에서 쓰는 `가나'나 간체자는 원시적이어서 한자를 결코 떨칠 수 없으며, 그 대안으로 차라리 국제어가 된 영어를 공용화하자는 주장에는 이해가 간다. 더구나 크게 자랑할 것도 못되는데도 그들의 나라사랑과 국어사랑의 강도 역시 만만찮고, 더구나 그들은 이제껏 닦아놓은 그들 국어바탕에 자신감이 생겨 영어 제2공용론을 들고 나온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한편, 우리는 그들의 처지와 바탕에서 차이가 나는 좋은 글자를 가진 까닭에 일본이나 중국쪽의 어려움에서 꽤 느긋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방송에 나와서 얼굴도 붉히지 않고 영어공용론을 말하거나 신문에 글을 써내는 사람들을 보면,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집단이나 개인들의 의식이 엄청나게 뒤틀려 있는 것을 절감한다. 이른바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영어공용론 찬반이 팽팽히 갈린다는 얘기도 있다. 우스개로 넘길 일이 아닌 상황에 이른 것이다.

1945년 광복 뒤 한글전용쪽으로 잡은 국어정책 큰 줄기는 대체로 옳았음이 그동안 쌓은 여러 성과 즉, 경제 발전, 국민 언어생활, 각종 인쇄물 등 정보 한글화 정도로 보아 알수 있다. 예컨대 조선 500년의 한자서적을 합친 것보다 광복 뒤 50년 동안의 한글서적 출판과 정보량이 몇십배나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동안 한자혼용론이 끊임없이 불거지기는 했으나 이쪽은 말글 발전에 도움을 주기보다 혼란과 걸림돌 구실만 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낙 고전들이 한자로 기록된데다 천년넘게 뿌리를 내린 까닭에 국어순화 대상으로서뿐만 아니라 낱말어원 교육 측면에서 일정한 반성구실을 한 면도 없지 않다. 이에 더하여 신문은 그 시각성에 기대어 제목 따위에서 한자를 계속 썼고, 대학을 졸업해도 신문을 읽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오게 했다. 김대중 정부들어 1999년 김종필 총리와 신낙균 문화부 장관, 심재기 국어연구원장으로 이어진 동아리는 일본과 중국을 빙자하여 거리안내판에 한자를 넣고, 행정차치부 사무규정을 바꿔 공문에서 필요한 경우 한자와 로마자를 병기한다는 규정까지 만들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우리말 세계화는커녕 이미 이땅에 거득히 들어찬 영어 밀물에 대한 대비나 외국어에 맞설 논리개발조차 소홀히한 게 사실이다. 당위론에만 기대어 외래어를 줄이고, 영어 따위 외국어를 많이 쓰지 말자는 잔소리만 거듭해왔을 뿐이다. 어쩌면 제나라 글을 지키고 쓰며 발전시키자는 말은 너무나 당연하여, 여기에 무슨 합당한 논리개발이나 이론 세우기가 필요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어니 세계어니 하며 영어 추종론과 공용론이 일고, 인터넷이 판치는 세상에 이것만이 살길이라고 영어선전을 해대니, 줏대없이 따르는 이가 또한 적지 않다.

지나온 길을 살피고 나아갈 길을, 임자정신과 사대주의, 세계화와 영어-돈 권력문제, 영어 알기와 쓰기 정도, 한글 정보화와 정보 한글화, 반성과 다짐들로 나누어 짚어볼까 한다.

1.지나온 길

우리나라에서 공용어(한자나 한문을 두고는 공용문자라고 해야 되겠지만, 여기선 말글을 아울러 일컬음)는 20세기만 해도 네번이나 바뀌는 역사가 있다. 한자, 우리말, 일본말, 영어 네가지다.

그중에서 한자 역사가 제일 길다. 신라 백제 고구려 적부터 썼으니. 15세기에 와서 훈민정음을 만들며 국어(국지어음)가 처음 나타나고, 19세기말에 국어부흥 운동이 일어난다. 이어서 영어(도이치, 프랑스어, 에스파냐어 등과 합쳐)와 함께 일본어가 본격적으로 들어온다. 이 시기 공용문자는 한자를 포함한 일본글이었다. 국한문혼용으로도 썼다.

1945년 9월 이후에 이 나라에서 공용문자 또는 공용어는 영어였다. `조선주민에 대한 태평양 미국 육군총사령관 포고문 제1호'에서 이를 명문화했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군정기간에 영어를 가지고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공용어로 함. 영어와 조선어 또는 일본어 사이에 해석 또는 정의가 불명 또는 부동이 발생한 때는 영어를 기본으로 함."이 그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부른 결과는 물론 아니다. 어쨌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0년 세월이 아닐 수 없다.

1948년 정부수립 뒤 우리말은 비로소 공식적인 국어가 된다. 그 글자 이름이 `한글'이다. 영어는 이때부터 하나밖에 없는 제1외국어란 지위로 물러앉는다. 물러앉았다기보다 더 확실한 지위를 챙긴 셈이다. 그것은 물론 우리 스스로 저지른 일이다.

1-1 이땅의 영어

이땅에 영어가 처음 들어와 가르키고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 1883년 조-영 수호통상조약에 즈음하여 세운 국가교육기관 동문학(83년), 육영공원(86년), 연무공원(88년), 그리고 뒤이어 미국쪽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 이화학당, 야소교학교(86년 전후) 등 사학들이 생기면서였다. 1896년 <독립신문>에서 한글기사와 함께 영문기사를 실음으로써 일반인에게 그 본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이후 영미계통 교회를 통하거나 그런쪽 학당(학교)에서 영어가 번지기 시작한다.

앞서 나온 바 있듯이 광복 뒤 남쪽에서는 미군정을 거치고 정부가 선 뒤, 제1외국어란 자격을 주어 중학부터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반면, 북한쪽은 소련과 중국 영향으로 러시아외래어가 많아지고, 중국쪽 한자어도 늘어난다. 일본도 패전국으로서 영어득세와 외래어가 넘치는 형편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개방에선 선배인 까닭에 우리는 그들의 한자말 번역어와 왜식 서양외래어까지 많이 받아들여 쓰고 있다.

광복 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거치면서 정부 요인들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어차피 미군 점령 아래서, 그리고 6 25전쟁 뒤 유엔군 중에서도 특히 미국과 미군은 정치, 경제, 민간 두루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애써 양키와 노랑내에 진저리를 치며 무시하면서도 60년대 이후까지 우유와 옥수수를 받아먹었고, 미국계 개신교는 더욱 번창했으며, 이들을 통해 물건너간 이들이 숱하다.

중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 영어는 필수였고, 입신출세하는 연장으로 자리잡는다. 이때, 이승만 등 망명 1세대들이 다시 돌아와 친일파와 함께 군정과 협력하며 단독정부를 꾸리고, 다시 6 25를 거치면서 미국 등지로 갔던 세대가 돌아와 교육, 경제, 정치, 군사쪽에서 막강한 실력을 행사한다. 미국은 큰집 정도로 통하게 되었으니, 친미니 친일이니 하는 말은 쓰레기무덤에 묻힌 지 오래여서 파내기도 어렵게 되었다. 사대주의는 나라 외교술을 넘어 개인들의 체질로 변해버린다.

한가지 자랑할 만한 것은 제헌국회에서 여러 법률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법률 제6호,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만든 점이다.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1948.10.9)는 내용이다.

이 법률도 이젠 좀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다만 조항을 없애는 일이다. 어문연구회 등 일부 한자옹호 단체나 개인들은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떠들나선 바 있지만, 무슨 배짱으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이는 이땅의 사람된 도리로서 할일이 아니다. 또 이떤 이는 이를두고 `대한민국의 모든 공문서는 한글과 로마자로 적는다'고 고치자 할 법하다. 과연 그런추세이긴 하나 인정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말글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져서 뼛가루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흥분과 한탄과 호통으로 버틸 일이 아니라, 생각을 가다듬어 여러방법을 찾고 힘을 모아 길을 뚫어야 하게 되었다. 이 일을 워드프로세서처럼 마이크로소프트 따위 미국회사에 맡길 일이겠는가.

그러고서도 우리것을 지킨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이미 국민 다수가 영어교육을 필수로 받아왔고, 받을 것이란 점이다.

1-2 교육, 취업, 언론

교육열에서 세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나라이지만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이는 바로 돈벌이와 출세 즉 신분상승의 지름길로 믿기 때문이다. 일류는 초중등뿐만 아니라 대학으로 이어지고, 이로써 각종 기업체 입사로 이어진다. 영어는 유학이나 학문 연구에서 필수인데, 각종 국가시험에도 필수로서 빠지지 않았다. 즉, 영어는 돈과 출세, 권력, 명예로 이어지는 조직적 연장이자 관문으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영미 유학생들이 보던 이른바 영어능력자격 시험인 미국 수입품 토플, 토익이 일반화하고, 국내에서도 조선일보사와 서울대학에서 함께 텝스라는 걸 만들어 세계화 전형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영어장사를 그 종주국에서만 맡아 돈벌이할 일은 아니므로 넘어가자. 그래서 이젠 국내기업 입사시험에서조차 이런 영어능력 시험점수를 기준으로 삼는 실정이다. 이른바 영어능력 시험이 의무시험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대학 재학중에 어학연수라는 것도 생겨 달러를 싸들고 다녀오는 게 바람을 넘어 관례로 굳어지는 듯하다.

한편으로 그동안 어느정도 규제를 받던 조기유학을 완전 자율화함으로써 요즘엔 `영어라도 건지겠지' 하며 대여섯살 유치원, 초등학생까지 국외로 내보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영어가 세계어 국제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었다. 우리가 그만큼 돈들여 배우고 익힌 말글이 그 정도 된 것이니 헛일 안 된 게 다행일 뿐이다. 미국을 싫어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미국이 조장한 바라기보다 우리 스스로 끌고 들어간 탓이 큰 까닭이다. 또한 미국이 그만큼 세계 패권국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실이다. 안팎이 맞아든다.

2. 나아갈 길

2-1 다시 오늘

이런 실정에서 마침내 나라 안팎에서 영어공용론이 불거지고 찬반논쟁이 한창인데, 이 논쟁 역시 거의 영어에 통달한, 또는 그것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벌이는 잔치성격이 강하다. 기껏 추려낼 수 있는 결론은

"영어는 이제 국제어가 되었으니, 다른 나라 사람에게 뒤지지 않도록 좀더 효율적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익히되, 제도적 공용은 안 된다"

정도일 것이다.

온 국민이 해야 하는 의무적 언어교육이 우리 5천년 역사에서는 일찍이 없었다.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지만, 동남아시아나 기타 식민지 나라들이야 좀더 일찍부터 종주국의 말을 떠안아 배워 영어, 프랑스말, 에스파냐말 따위를 공용어로 쓴다. 이들은 미처 자기말과 글을 챙길 여가가 없었거나 글자가 없는 탓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현실이 정체성 상실 밖의 또다른 어떤 아쉬움이나 비참, 행복, 발전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2-1-1 영어를 공용해야 하는가?

45년 9월 맥아더의 영어공용 포고문 시절은 일단 제쳐두자. 요즘 들어 다시 영어공용론이불거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또, 영어공용은 가능한가? 공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이 나오는 까닭부터 살펴보자.

우루과이라운드, 세계무역기구, 경제개발협력기구 등이 생기고 우리가 이에 가입하면서 경제국경이 사라지고, 우리나라 역시 세계 무역질서에 얽혀들고서 세계화, 국제화란 구호가 나돌았다. 정부 언론 학자 재벌 경제인들이 마치 세계화만이 살길인 것처럼 외쳐대고 부추긴다. 이에는 일종의 정권유지 측면에다 기득권 지키기가 바탕에 깔려있다. 90년대 초 김영삼 정권이 깃발을 들었고, 아이엠에프를 거치며 김대중 정권이 이를 더욱 높이 들어 휘두르는 중이다. 그러잖아도 영어공부에 열심이던 백성들이 낙오될세라 괴롭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유독 세계화와 국제화의 표상이 영어가 된 것도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가 판을 치는 까닭일 것이다. 더구나 미국이 어디 남인가?

-- 그것을 알아야 장사도, 학문도, 외교도 할 수 있다. 일반인들도 외국 구경을 하려면 영어를 꽤 알아야 하고, 더구나 외국관광객이 이쪽을 찾을 때도 그들의 편의를 위하여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 시대다. 인터넷 정보의 80% 가까이가 영어로 되어있다. 인터넷을 잘 부려쓰기 위하여 영어를 해야 한다. 앞으로 이 세상엔 영어 등 몇 개 말글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가 세계 경쟁력이다. 그것을 모르면 개인이고 나라고 죽는다. 우리말을 보완해주는 국제어요, 글로벌시대의 생존기술이다.--

대충 이런 정도가 공용론의 바탕이 된다. 지금처럼 해서는 효과가 없으니 공용해서 써야만 온 국민이 효과적으로 배울 것이란 점도 내세운다. 여기엔 일부 경제인사, 영어학원장, 얼치기 영어교육학자, 일부 외교관, 언론인들이 주로 겁없이 나선다. 부추기는데 달뜨지 않을 한국사람은 적다. 당자나 자식된 부모나 두루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영어공용은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살펴보자. 영어가 중요한 만큼 우리나라에서 공용어로 쓰일 수 있는 것인가? 김영명씨 등 사회학자들은 적어도 우리나라 인구 10%가 영어를 자유롭게 쓸수 있으려면 아마 50년 뒤쯤이나 가능할까 싶다고들 한다. 그동안의 시간과 돈이면 아마 나라를 하나 더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사교육비가 한해 30조원이라는데, 그 절반은 영어공부에 들 것이다. 제도교육으로 가보자. 앞으로 모든 교과서는 한글과 영어로 된 두가지를 만들어야 할 것이며, 수학도 과학도 사회도 음악도 미술도 모두 두가지 언어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모든 교사들은 영어에 능통해야 할 것이고, 방송도 신문도 모든 공문서도 두가지로 만들고 내보내야 할 것이다. 출판물이 그러하고, 노래와 문학도 그래야 할 터이다.

어디 그 뿐인가? 가까운 이웃인 일본, 중국, 러시아어도 해야 할 터인데, 그러면 프랑스, 독일, 에스파냐말은 누가 할 것인가? 사람을 나누어 억지로 시킨다 해도 될 턱이 없는 일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니 학생들은 외국어를 배우다 지쳐 정작 다른 학문에 들어갈 여가가 없을지 모르겠다.

공용했을 때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영어를 잘 부려쓴다고 하여 나아질 부분이 무엇일까? 공용론자들 말처럼 우선 장사에 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야 장사를 하는 법이다. 발명특허가 많이 나올 리도 없을 성싶다. 말글에 짓눌린 백성들의 머리에서 슬기가 샘솟을 리 없는 까닭이다. 학문이 훨씬 더 발달할 것이냐 하면 그렇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일부 영역을 제외하고는, 영어로 학문을 하는 것보다 우리말글로 학문을 하는 것이 더 빠르고 깊이를 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그만한 역량과 바탕을 누리고 있다. 또한 인터넷은 유용한 연장이지만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필요성을 느끼는 이는 영문 정보쯤 꽤 읽어낼 수 있다. 이를 들추어 공용론을 펴는 것은 영문투로 말하여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말이 안 된다. 물론 한글정보를 영문화하거나, 직접 영어사용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 팔 일인데, 그런 것 역시 공용화로서 해결할 일은 아니다. 약간 전문가면 된다. 연장을 부려쓰기 어려우면 쉽게 쓸 연장을 만들어낼 일이다. 그런 필요성에서 앞으로 얼마든지 쓸모있는 연장이 나올 것이다. 그것으로 장사를 할 일이며, 그것이 경쟁력이고, 세계화하는 길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꼭 영어에 능통해야 할 필수 인원은 얼마나 될까? 크게 잡아 열에 하나 정도라 치자. 우리는 그 열에 하나가 되기 위하여 영어에 인생을 걸고 있다. 그리고 그 열에 하나가 된 사람도 외국인과의 만남이나 첨단의 외국 정보를 챙기는 일에 종사해하는 사람도 극히 적다. 그 열에서 하나 정도가 그런 일에 종사한다. 그 수가 4천만 인구 중에 40만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런 낭비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제도화하지 않아도 이 정도인데, 그런 제도를 두면, 필요한 만큼 선택해 하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공용론은 개인의 재능과 필요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제도로 가자는 말이 된다.

결국은 위의 물음들에 두루 `아니오'라는 답변이 나온다. 아무튼 우리말글은 요즘 같은 추세로만 내버려두어도 머잖아 부서지고 갈라지고 비틀려갈 그 몰골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어떤 이는 아름답게도 `국어를 제대로 발전시킨다는 것을 전제하고'를 조건으로 내걸지만, 그것은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그야말로 낯두꺼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의 여러 사물이 맞물려 돌아가는 길에서 두가지가 오래 양립할 수 없는 게 이치다. 암수나 빛과 그늘과 말글은 성격이 다르다. 공용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과 같은 현실을 방치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

 2-2 문제1

제도교육에서 지난 50년을 온 국민을 상대로 외국어 특히 영어교육을 시행한 결과가 우리말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한마디로 아직은 별것 아닌 것으로 볼 것이다. 대충 살펴보면 영어외래어가 많이 늘어나고, 상표 회사이름 등에서 로마자가 많이 쓰이게 됐으며, 우리 말투에 영어투가 늘어나고, 말차례나 문투에 영문투가 약간 스며든 정도다. 이런 정도의 변화도 결코 얕잡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아직은 견딜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이다. 물론 이것도 볼모에 따라서는 심각성이 달라질 수 있다.

견딜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은, 외국어 교육과 함께 강력한 우리말글 교육에다, 다른 교과목 역시 우리말글로 가르치고 익히고 있는 까닭이다. 적어도 일상에서 아직은 영어가 스밀 여지가 적다. 이는 50년의 제도교육이 이룬 성과이자 우리말글의 과학성과 편의성, 전통에 기대는 바가 많다. 적어도 대학교육이나 학문세계에서 우리말글로 해도 큰 모자람은 없다. 논문의 영어화는 단지 외국인을 위한 이차적 도구일 뿐이다. 여기서 의학 등 국민생활과 관계가 깊은 분야가 순전히 영어 등 외국어로 행해지는 현실(임상일지, 치료기록 등)은 관련 학문과 더불어 시급히 고쳐나가야 할 분야라 하겠다. 이 분야에서 <우리말 해부학용어집>이 특별한 성과로 꼽힌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가정을 한번 해보자. 조선시대에 양반 아닌 서민들까지 한문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고 썼다고 했을 때를 말이다. 그 결과를 상상하면 우리는 캄캄한 어둠을 맞게 된다. 말하자면 90% 이상의 한자문맹 덕분에 우리말이 그런대로 보전 발전될 수 있었다. 정치 경제 사상 신분 현실에서는 어둡게 살았을 구할 이상의 무지렁뱅이 덕분에 우리말이 이만큼이라도 보전 발전될 수 있었다는 것은, 양반의 구할은 이 방면에서 허섭스레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나머지 일할은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 덕분이다. 역설적이지만, 20세기 전반기의 일제 침탈과 그 전의 사대모화의 반작용이 그나마 임자정신을 단련시킨 덕분도 좀은 있을 듯하다.

2-3 문제2.

지금까지의 추세와 현황이 별것 아닌 것으로 칠 수 있는 데 비하여 앞으로는 절대 낙관할 수 없는 조짐들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우선 인터넷의 등장으로 한글로마자 표기들이 많아지고, 심지어 영어식 회사이름까지 쏟아진다.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영화제목들, 영어 팝송들은 번역도 안 된 채 글자 그대로, 때로는 발음 그대로 말하고 쓰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노래라고 불리지 않을까보냐.

외래어표기에서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의 이중적 표기가 등장한 지 오랜데, 보브와 밥, 톱과 탑, 도트와 닷 따위가 그 보기다. BK21을 `두뇌한국 21'로 쓰는데, 교육부에서 내놓은 21세기 대학학문 지원프로그램 이름이다. 미국스런 발상으로 만든 말인데. 이것을 읽는 방식도 우습하다. 대체로 `브레인 코리아 투엔이원' `브레인 코리아 이십일' `비케이 투엔이원' `비케이 이십일' `두뇌한국 투엔이원' `두뇌한국 이십일' 등이다. 원래 아라비아숫자가 우리글이 아니지만 그것을 읽는 방식도 영어식으로 가는 현상을 보여준다. 3D, 3S 따위도 삼디와 스리디, 삼에스와 스리에스로 혼란스럽다. 하나 둘 셋에 일 이 삼은커녕 원 투 스리로 갈 판이다. 이런 변화가 20세기에 100년이 걸렸다면, 2000년대엔 10년 정도로 빨라질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로마자 준말문제는 이제 그 준말 약자사전을 따로 만들어 정리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정책면에서 지금까지 외래어문제는 한탄만 했을 뿐 거의 방관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부에서는 국어심의위원회와 국어연구원을 두어 운용하고 있으나, 그 활동은 보잘것없다. 한글맞춤법 정도를 붙들고 있을 뿐, 나날이 쏟아지는 기초자료 조사조차 제때 챙기지 못하고 이따금 다 퍼져 익고난 뒤에야 사후약방문으로 일부 외래용어를 다듬내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것조차 잘 전파되지 않는다. 적어도 번역청과 국어연구원을 아우른 틀을 만들어 겨레의 운명을 걸 정도로 활동해도 모자랄 판이다.

2-3 임자정신

우리 겨레의 특징으로 사대주의와 자주정신을 아울러 꼽는 이가 많다. 이는 아마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형성된 풍조가 아닌가 싶다. 당나라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백제를 친 신라는 결국 청천강 이북을 잃고 만다. 그 후유증은 발해가 나중에 생기지만 근세에도 청나라 성립과 이른바 동북삼성쪽 조선족 자치주, 여러 자치현으로 이어진다. <한겨레> 등에서 우리가 동북삼성의 땅이름을 우리식 한자발음으로 적는 것을 예외로 인정하는 것도 현지동포들과 그쪽 땅과의 친밀성을 인정한 까닭이다.

아무튼 중국은 그 넓은 땅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고, 그밖의 이민족은 끊임없이 중국의 인민 보급창 구실을 해온 셈이다. 큰나라를 섬기되,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정신에서 뒤엣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쳐 19세기말에 들어서야 나타난다. 즉, 일본, 서구 등의 문물을 접하고 그들의 부추김을 받고서야 겨우 모화관을 `독립문'으로 고치고, 조선국을 대한제국으로 바꾼다. 그러나 너무 늦고 자주적이지 못했으며, 꼭이 지켜야 할 제것도 없었는지 청으로부터의 독립은 곧 일본 식민지로 이어진다. 임란 뒤 대략 300년 만이다.

20세기 후반기 다시 일본과 중국이 큰나라로 등장하고, 여기에 미국을 더하여 상당히 복잡한 시기에 놓였다. 러시아를 합쳐 1강3약인데 우리는 이를 통칭 4강이라 불러 4강외교라는 말까지 나온다. 중국이 남이 아닌 것으로 여겨온 게 일천년이 넘었고, 이젠 그런 흐름의 끝에 미국이 남이 아닌 피를 나눈 `혈맹'이 된데다 세계 패권국이 됐으니, 응당 섬기지 않고 무얼하겠는가. 또 약간의 세기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본과 중국 또한 작은 나라인가. 이들도 섬겨야 한다. 러시아가 가깝고, 인도, 유럽들도 작은 나라가 아니므로 그들과도 잘 지내야 한다.

섬기는 것의 방식을 좀 달리할 필요가 있겠다. 조선의 양반들은 중국만 섬기면 되었지만, 온 국민이 양반이 된 지금은 국민이 이를 좀 나눠지면 된다. 그것이 민주화요, 세계화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문물을 배우고 살피며 이용하는 것이다. 비록 아직도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일본의 한국 연구는 한국의 일본 연구보다 훨씬 알차다고 한다. 한국의 중국 연구와 미국 연구도 연구 이용이란 정도를 넘어설 까닭이 없다. 넘어서고자 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한국인 출신이 미국적을 얻어 미군이 될 수 있고, 재중동포가 역시 그쪽 군인이 되어 중국에 복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고서 제 민족을 분탕질한다면 그는 무슨 원한을 품은 사람일 것이다. 아무튼 이런 연구는 영어공용화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쪽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단체와 개인들을 길러야 한다. 나라에서는 이를 정책이나 연구비로 지원하는 것으로 족하다. 물론 그 최대한의 과업성과는 챙겨야 할 것이다. 절대로 온 국민을 영어구렁텅이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여론은 냄비같아서 쉬 끓고 쉬 식는다. 여론정치를 하는 정치를 뒤에서 살필 정치틀을 따로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임자가 있어야 즉, 자신이 있어야 남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다. 자신이 없는데 어찌 남과 잘 지낼 수 있는가. 이것이 임자정신이다. 그 임자는 우선 자신의 것을 아끼고 발전시키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것을 잃고 버리고 다른 것을 붸는다면 그는 이미 이나라 백성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이땅을 떠나야 한다. 철저히 자신을 버리고 다시 자신을 찾고서 돌아와야 한다.

3-1 기계화 뜻 넓히기

글자생활을 기계화하자는 말이 있다. 한글학회 등에서는 아직도 이 말을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한글은 기계화하기에 아주 적합한 글자다. 전날 타자기가 글자생활의 편의성을 가져다 주어 공병우 타자기가 나오고, 한글자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컴퓨터의 등장으로 실상 기계화는 올데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계화의 여지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더욱 넓어졌다. 즉 디지털 정보화 영역이 열린 것이다. 한글-영어, 한글-일본글, 한글-중국글, 한글-프랑스글, 한글-에스파냐글, 한글-도이치글처럼 자연어를 기계어로 처리하여 서로 뒤침으로써 기계번역이 되게 하는 것이다. 아마 말까지 디지털화가 되면 진짜 한글기계화의 완성에 이러렀다 할지 모르겠다. 이를 잘하면 굳이 돈과 시간, 정력을 써가며 외국어를 배울 까닭이 없다. 전공하는 이나 특수분야를 제외하면 국민들은 상식적인 정도로만 부려쓰면 된다. 중등학교 교육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더 배울 사람은 국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대학이 뭣하는 곳인가? 또한 무수한 사학과 사설 학원은 뭣하는 곳인가? 쓸모도 없는 사람에게 영어풍을 조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순전히 장삿속이 깔려있다. `경쟁력' `세계화'를 외치며 이를 부추기지만 결국은 호들갑이거나 장삿속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들의 말을 매스컴이 취급하고, 대량전달을 함으로써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이다.

매스컴이 영어부추키기의 원흉으로 떠오른다. 정치개혁 다음은 언론개혁이라고 했던가. 언론개혁의 우선순위는 사회를 앞선답시고 혼란을 조장하고 장삿속을 챙기는 언론언어 폭력에 맞출 법하다. 이것 없이는 언론개혁이란 없다.

3-2 효과적인 순화와 말글쓰기

앞서 말했지만 지금의 국어연구원 수준이나 한글학회 등 민간의 국어순화 노력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현실문제에 비춰보면 불만족스럽기 짝이 없다. 거의 포기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 방송 이상의 재빠른 거름장치와 인력을 갖추어도 모자랄 정도다. 순화용어를 바로바로 공급하고 강제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국어심의위는 한달에 한번꼴로 모여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민간학술 모임에서 이를 대행하도록 해도 될 것이다. 그 결과는 반드시 존중해 쓰도록 해야 한다. 여기엔 강제하는 힘이 뒤따라야 한다. 잔인하지만 따르지 않으면 벌을 줄 수 있어야 성검이 있는 법이다.

아울러 언론자체의 용어순화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탁월한 인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돈을 벌어서 무엇에 쓰겠는가.

3-3 학문영역 말글쓰기 제대로 하기

학문 영역에서 영어 등 외국어 쓰기 풍조는 멍이 들대로 들었다. 이 분야도 경각심을 가지고 우선 자체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인문 사회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응용과학과 공학, 의학분야도 시급히 우리말글로 베풀어써야 자체 학문역량이 쌓일 것이다. 즉 제대로 된 학문글쓰기가 시급하다. 이 역시 관련 분야 당사자들의 활발한 말만들기와 순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글쓰기로 일구고 담아내야 한다. 그러고서야 외국학생도 들어올 것이며, 주체적 학문이 발전하고, 다른 나라를 이롭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학문이 말글에서 시작하여 말글로 끝난다는 점을 새겨 우리말글로 철학하기와 학문하기로 나아간다면 진정한 임자정신을 살리는 길도 열수 있을 것이다..

4. 마무리

영어공용론이 당최 헛소리만은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현실이 그런 논쟁이 싹트도록 많은 거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토질이 너무 기름져 싹은 쉽게 틀지언정 웃자라서 쓰러지기도 쉽다. 우리말글은 타고난 유전자가 이런 땅에서 적합하게 자라도록 만들어졌다. 결코 웃자라지도 늦자라지도 않을 것이다. 다소 웃자라는 외래종자에 치일 때도 있을 터이나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탄탄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자면 손길이 필요하다. 바람이 세게 불 때 바람막이라도 해주는 손길, 큰물이 들 때 물문이라도 막아주는 손길이 여럿이면 좋다.

지금 영어논쟁에서 거품을 빼야 한다. 이것만이 살길이니, 영어가 경쟁력이니, 생존번영의 조건이니 하며 과도하게 조장하고 있다. 거품을 빼야 한다. 그것은 한낱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어는 하나의 도구로서 `이용한다'는 생각을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이는 특히 외국어나 영어를 가르키는 이들이 명심하고 후학들을 지도해야 한다. 남을 알고 통하는 연장으로서 필요한 만큼 한다는 말이다.

영어를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풍토를 맑혀야 한다. 그러자면 그런 것을 힘들여 하지 않아도 살아갈 길을 준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와 국가에서 할 일이며, 많이 배워 많이 아는 이들이 할 일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존경을 받을 이들은 바로 제도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적어도 그들은 외국어에 물들지 않은 순수에 가까운 토박이들이다. 그들의 말을 듣고 싶다.

우리가 특히 지키고 발전시켜나갈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겨레의 참된 모습이다. 자연을 알고 이와 더불어 살아가며, 부지런하고 끈기가 넘치며,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자신을 가다듬어 남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그 정신이다. 그것이 녹아 있는 곳이 말글이며 그것을 녹여낼 그릇이 말글이다. 그것을 지키고 다듬어나가는 일을 넘어설 만한 값진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자, 이제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말만으로는 잘 되는 것이 없다. 정치를 고치려 해도, 규제를 줄이는 것도, 거리질서도 저절로 되지 않는다. 법을 만들고도 이를 지키려 하지 않는 게 인간이다. 하물며 법을 어길 것을 조장하고, 진실을 비틀며, 욕망과 허영심을 부추기는 현실에서 벌어질 것은 타락과 칼부림뿐이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또하나의 규제틀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선 법률 제6호를 좀더 강화하든지, 시행령을 만들어 무분별한 외국말글 쓰임을 잡도리하는 것이 게중 현실적일 수 있겠다.

정치 정책 결정자 자격점검과 의식 높이기 역시 국가적 관심으로 펼 일이다. 나라에서는 이밖에도 이쪽의 창조적 개발 운동가를 지원하고 길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