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글자를 함께 쓸 수 없는 까닭

 

 

                                                        김정섭( 우리말 우리 얼 운영위원)

1.한문글자로는 우리 말을 적을 수 없다.
 

한문글자를 한글과 함께 우리 글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글자살이에 한문글자를 섞어 써야 한다고 한다. 글자가 무엇인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글자란 말소리를 담는 연모다. 따라서 나라글자라면 반드시 나라말 소리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나라말 소리를 담을 수 없는 글자는 나라글자일 수 없다. 그런데, 한문글자로는 우리 말 소리를 담을 수 없다. 하늘, 땅, 바다, 바람, 흙, 사람 따위 겨레말을 한문글자로 써 보라. "천(天), 지(地), 해(海), 풍(風), 토(土), 인(人)" 같이 뜻으로는 나타낼 수 있으나 말소리는 적을 수 없다. 우리 말을 적을 수 없는 글자는 우리 글자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 글자살이(문자 생활)에서 한문글자를 쓸 까닭도 없고 써서도 안 된다.

 

2.한자말에서 들어온 말도 우리 말이므로 한문글자로 적어서는 안 된다.
 

한자말은 한문글자로 쓰고 겨레말은 한글로 쓰자고 하는데 얼핏 들으면 옳은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어느 겨레건 겨레말로만 말살이를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 말도 쓸모가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받아들인 남의 말(외국어)을 들온말(외래어)라 하는데 이 때 들온말은 겨레말과 마찬가지로 나라말이다. 나라말이라면 나라글자로 쓰는 것이 옳다. 비록 한자말에서 들어온 말이라도 들온말(외래어)이 되었다면 반드시 우리 글자로 적어야 한다. 말밑을 따져서 본디 나라 글자로 적는다면 우리는 글자살이를 할 수 없다. 영어에서 들어온 말은 로마글자로, 몽골말에서 들어온 말은 몽골글자로 적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3.한문글자는 우리 한아비가 만든 글자가 아니다.
 

한문글자는 우리 겨레가 만든 글자이기 때문에 우리 글자라 한다. 중국 옛 책에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동이족이 우리 겨레이므로 곧, 우리 한아비가 한문글자를 만들었다고 우긴다. 또, '집 가(家)'자를 보면 그 짜임새가 '갓머리' 밑에 '돼지 시'자를 받쳐 쓴 꼴인데 이것은 제주도 '똥돼지'에서 나온 것이므로 한문글자가 바로 우리 겨레 삶에서 비롯한 본메본짱(증거)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똥돼지'는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와 그밖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말을 적을 수 없는 글자를 우리 한아비가 만들 턱이 없다. 한문글자는 중국말을 적으려고 중국 사람이 만든 중국글자일 뿐이다.

 

4.한문글자가 우리 글자로 바뀌는 일은 없다.
 

어떤 사람은 비록 중국 사람이 만든 글자이나 신라 때부터 이천 년 넘게 우리가 써 온 글자이므로 이제 우리 글자가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개꼬리 삼 년 묵혀도 황모 되지 않는다'는 속담처럼 아무리 오래 썼다 해도 한문글자가 우리 글자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또, 흔히 말하는 바와 같이 신라 때부터 한문글자를 썼다는 것도 맞는 말이 아니다. 우리 겨레가 두루 썼다고 하려면 적어도 열에 대여섯 사람이 쓸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신라 때 몇 사람이 한문글자를 알고 썼을까? 모르긴 해도 몇천 사람 가운데서 기껏 한두 사람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고 고려 때도 마찬가지다. 조선 때 와서 비로소 몇백 사람 가운데 한두 사람꼴로 한문글자를 썼다고 하는 것이 옳다면 우리 겨레가 2천 년 동안 한문글자를 썼다는 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밝혀 둘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국자(國字)'라는 말뜻이다. 한문글자 뜻으로 보면 '나라글자'로 풀이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일본에서 만든 한문글자를 일컫는 말이지 나라글자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한문글자는 '국조자(國造字)'라 한다.

 

5.한문글자는 터무니없는 한자말을 끌어들인다.
 

'낭만(浪漫)', '초자(硝子)'도 한문글자를 쓰기 때문에 들어온 터무니없는 한자말이다. 일본에서 서양말을 받아들이면서 '로망'과 '글라스'를 소리를 따서 저네들 한문글자 소리대로 쓴 말이다. 일본에선 '낭만과 초자'를 '로망과 가라스'라 읽는다. 이것이 한문글자 소리가 일본과 다른 우리 나라에선 '낭만과 초자'로 바뀌었다. '구라파(歐羅巴)'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유럽'이라 읽는데  '구라파'라 읽어서 아주 엉뚱한 말로 바뀌었다. 한문글자를 쓰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일본에선 '$'자를 '부처 불(弗)'자로, 'g' 자를 '기와 와(瓦)'자로, 'm'자를 '쌀 미(米)'자로 쓰고 '달러, 그람, 미터'라 읽는데, 우리는 '불', '와', '미'로 읽는다. '$'나 'g'이나 'm'는 온 누리 모든 나라에서 두루 쓰는 하나치(단위)다. 굳이 꼴이 비슷한 한문글자로 바꾸어 써야 할 까닭도 없고 더욱이 '불, 와, 미'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밖에도 아무 쓸모 없는 한자말이 매우 많다. 한문글자를 버리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6.한문글자를 쓰면 엉터리 한자말을 만들어 낸다.
 

한문글자는 말 만드는 힘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새 말은 거의 다 한자말로 만든다. 우리 말로는 새 말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래서 우리 말은 자꾸 설 자리를 잃어 간다. 말도 자꾸 부려 써야 힘을 얻는다. 갈고 닦아야 빛이 난다. 묵혀 두면 졸아 들어서 끝내 나라말 구실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한문글자에 찌든 사람들은 한문글자가 아니면 새 말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문글자를 얽어 짜서 만든 새 말이 제대로 된 말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래서 우리 말살이는 뒤틀리고 어지러워진다. '소주 밀식(少株밀植), 가수 주의(假睡注意), 미화원(美化員, 美靴員), 피로 회복(疲勞回復), 안전 사고(安全事故)' 따위 엉터리 한자말을 만들고는 흐뭇해한다. 피로가 회복되면 앓아 누울 수밖에 없고 사고는 안전한 데서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을 헷갈리게 하는 말이다. 이 따위 한자말로는 말글살이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7.한자말은 한문글자를 끌어들인다.
 

겨레말은 누구나 다 알고, 쉽게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 말은 따로 배우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배우기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매우 적다. 남이 모르는 것을 나만 안다면 이것은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다. 곧, 많이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으로 갈래짓는 잣대가 된다. 그러니, 배운 사람은 되도록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딴나라말을 써서 제 자리 높이를 끌어올리려 한다. 또한, 딴나라말은 새롭기 때문에 눈길을 끈다. 그래서 더욱더 딴나라말을 골라서 쓴다. 말은 그 말을 적는 글자를 끌어들인다. 한자말을 쓰면 저절로 한문글자를 쓰게 된다. 아버지를 제쳐 놓고 '부친(父親), 엄친(嚴親), 대인(大人), 춘부장(椿府丈)' 따위를 쓰고 어머니 대신에 '모친(母親), 자친(慈親), 북당(北堂)' 따위를 쓰면 이들 한자말을 한문글자로 쓰고 싶어한다. 한문글자로 써야 마음이 개운하고 우쭐해진다. 사람들은 겉멋에 빠져서 알맹이를 놓치게 된다.

 

8.한자말을 나날살이에서 두루 쓴 것은 일제 식민지 때부터다.
 

한문글자가 들어온 뒤로도 우리 겨레가 한자말을 쓴 것은 아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 조선 때도 한자말을 두루 쓴 것은 아니다. 상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양반들도 나날살이(일상 생활)에선 겨레말만 썼고 한자말은 어쩌다 저들끼리나 상사람들 앞에서 한마디씩 썼을 뿐이다. 이렇게 한자말 쓰는 것을 '문자 쓴다'고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또, 임금님조차 아들 딸 들에게는 겨레말을 쓴 것이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이 공주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한자말을 우리 말글살이에 섞어 쓴 것은 일제 식민지 때부터다. 일본 말글을 '국어'로 배우면서 한자말을 두루 쓰게 되었다. 이른바 '국한 혼용'이란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9.한자말을 쓰면 한문글자로 글자살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인다.
 

오직 한문글자라야 글자살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겨레말마저 한문글자로 쓰려고 한다. 생각, 뒷동산, 시집 따위는 겨레말이지만, 한문글자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마저 한문글자로 쓴다. 한문글자가 없을 땐 억지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생각을 生覺(생각)으로, 뒷동산을 뒷東山(동산)으로, 시집을 媤家(시가)로 쓰는 것이 그 보기다. '시집'은 '새집'에서 번진 겨레말이니 '시집 시(媤)'자가 있을 턱이 없다. 이 '시(媤)'자는 우리 나라에서 만든 한문글자(국조자)이다. '사돈'은 본디 '몽골말'인데 소리를 따 '사돈(査頓)'이라 쓴 것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지난번 맞춤법과 대중말을 새로 가릴 때 '사둔'으로 하지 많고 '사돈'이라 한 것은 한문글자에 얽매인 탓이다. 중국에선 사돈이라 하지 않는다. 본디 남의 말을 받아들일 때는 제바닥 말소리대로 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런데, 한문글자로 쓰려니 엉뚱한 소리로 바뀐다.  

 

10.한자말을 쓰면 겨레말이 사라진다.
 

겨레말이 있는데도 한자말을 끌어들이면 겨레말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내쫓긴 겨레말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 말이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우리 겨레는 이 땅에 삶터를 잡은 뒤 오랫동안 겨레말로 모자람 없이 말살이를 해 왔다. 그런데, 한자말이 들어오면서 겨레말은 하나둘씩 한자말에 밀려서 안방에서 내쫓겨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는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서 반 넘게 한자말이 차지하고 있다. 뫼(산), 가람(강), 미르(용), 미리내(은하수), 가시버시 (부부), 각시집(처가), 삼개(마포), 노들나루(노량진), 두메(오지) 따위는 옛말이나 죽은 말로 그 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지만 아예 그 자국마저 찾을 길 없는 겨레말이 많다. 겨레말 속에 겨레얼이 들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겨레말 하나가 사라지면 겨레얼 한 귀퉁이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11.한자말은 뜻을 알기 어렵다.
 

한문글자가 뜻글자라 하나 글자를 보고 낱말 뜻을 깨친다는 말도 거짓이다. '국회, 사회, 회사, 은행, 초자, 와사, 낭만' 따위를 한문글자 뜻으로 풀이해 보라.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학생(學生)'을 글자풀이하면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배움이 삶이다, 배움이 태어난다'나 '삶을 배우다, 태어남을 배우다'라 해야 한다. 중국 고사 성어인 '조삼모사, 각주구금, 결초보은' 따위는 아무리 한문글자 뜻으로 풀어도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 글귀에 얽힌 옛 이야기를 모르고선 뜻을 알아낼 길이 없다. 반드시 배우고 익혀서 외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이 한자말이다. 먼저 한자말을 쓰고 다시 우리 말로 풀이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12.한자말을 쓰면 말뜻이 흐려진다.
 

또 하나, 한문글자와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할 까닭은 한자말을 쓰면 말뜻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흔히 한문글자는 뜻글자이므로 뜻이 또렷이 드러난다고 하는데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몇 가지 보기를 들어 보자. '현안 문제(懸案問題)'를 한문글자로 쓴다고 뜻이 똑똑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글자를 뜻풀이해도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걸린 일, 풀어야 할 일'이라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 '현실화'도 그렇다. '요금 현실화'보다 '값 올리다, 삯 올리다'하면 말뜻이 훨씬 똑똑히 드러난다. '현월(弦月)'을 한문글자로 쓴다고 뜻을 바로 알 수 있을까? '초승달'이라면 어린애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데 한자말을 써서 뜻이 흐려졌다.

 

13.한자말을 쓰면 말(글)이 길어진다.
 

한자말을 쓰면 글이 짧아진다고 하는데 이 또한 거짓말이다. 보기를 들어 보자. 청취(聽取)하다는 '듣다'이고 현시(顯示)하다는 '내보이다, 뽐내다'이다. 쾌청(快晴)하다는 '맑다, 개다'이고 주도(主導)하다는 '목대잡다, 이끌다'이다. 조우(遭遇)하다는 '만나다, 마주치다'이고 유실(遺失)하다는 '잃다, 빠뜨리다, 흘리다'이다. 한자말을 하나씩 뜻풀이하면 '유실물(遺失物)'이 '잃어버린 물건'처럼 길어지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말을 쓰면 틀림없이 짧아진다. 조금 긴 글을 보자. '실시(實施)하기를 보류(保留)하기로 하고'는 '잠깐 미루어 두고' 하면 된다. '혼탁 양상(混濁樣相)으로 치닫고 있다'는 '흐려지고 있다'로, '막대(莫大)한 수입 증가(入增加)를 보게 되었다'는 '큰돈을 벌게 되었다'로, '해외 판매망(海外販賣網)을 확충(擴充)할 수 있는 기반(基盤)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여러 나라에 팔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로 해서 모자람이 없다. '저렴(低廉)한 가격(價格)으로 구입(購入)할 수 있는 기회(機會)를 포착(捕捉)했다'를 '싸게 살 수 있는 때를 만났다'로 고치면 스무 글자가 열한 글자로 줄어든다. 이렇게 우리 말을 쓰면 글이 짧아진다. 한자말을 쓸 때도 길어지지만 한문글자를 도림(괄호) 속에 넣는다면 더 길어진다.

 

14.한자말을 쓰면 곶감겹말이 생기고 말이 뒤틀린다.
 

한자말은 겨레말이 아니기 때문에 뜻을 알아도 가슴에 바로 와 닿지 않는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겨레말을 덧붙여 쓴다. 그래서, 뜻이 겹치고 말 흐름이 흐트러진다. 군더더기 말이 덧붙기도 한다. 이래서는 제 뜻과 생각과 느낌을 제대로 나타내기 어렵다.

'바닷가'를 '해변가'라 하고 '일요일'을 '일요일날'이라 하고 '모래밭'을 '모래 사장'이라 한다. '손뼉을 친다'면 될 것을 쓸데없이 '박수(拍手)'라는 한자말을 쓰려니까 '박수치다'라는 뜻 겹쳐진 말이 생긴다. '파란 하늘'이면 될 것을 '창천(蒼天)'을 쓰려니 '푸른 창천'이라 하고 '푸른 물결'을 '푸른 창파(滄波)'란 곶감겹말로 쓴다. 이런 말은 바른 말이 아니다. '열매맺다'를 '결실을 맺다'고 하고 '축구하다'를 '축구를 찬다'로, '탁구하다'를 '탁구를 친다'고 한다. 또, 쓸데없는 말이 덧붙는 일이 생긴다. '올해와 같도록 유지할 방침이다.'에서 '유지'는 군말이다. 한자말을 쓰고 싶어하니 이런 일이 생긴다.

 

15.한자말에는 '소리 같고 뜻 다른 말'이 많다.
 

'소리 같고 뜻이 다른 말'은 어느 나라 말에나 다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문글자는 팔백 가지 소리밖에 없으므로 소리가 같은 말이 다른 나라 말에 견주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따위 한자말은 글자를 보지 않고는 뜻가름할 수 없다. 글로 쓸 때는 한문글자로 뜻을 안다 하더라도 말을 할 때는 어떻게 할 길이 없다. 다 한자말을 쓰니 이런 일이 생긴다.

'내의(來意, 內衣, 內意, 內醫)'는 우리 말로 '찾아온 뜻, 속옷, 속뜻, 아낙 의원'이라면 바로 뜻을 알 수 있다. '사경(私耕, 砂耕, 斜徑, 死境)'도 소리 같은 말이 여러 개 있는데 굳이 한문글자를 써서 뜻가름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말로 "사래, 모래 가꾸기, 비탈길, 죽을 고비"로 쓰면 깨끗이 풀린다.

 

16.한자말을 쓰면 겨레 힘이 졸아 든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겨레 힘을 떨치던 우리 겨레가 한문글자와 한자말을 받아들이면서 기름과 물처럼 둘로 나뉘고 겨레 힘은 사그라졌다. 한문을 배운 양반과 한문을 배우지 못한 상사람으로 갈래짓고 서로 맞서서 한쪽은 억누르는 자리에 서고 다른 쪽은 짓밟히는 자리로 내려앉으니 겨레 힘이 하나로 뭉칠 수가 없어진 것이다. 그 뒤끝은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다.

백성이 주인 자리에 있지 않는 나라에서 '충성'할 백성은 없다. 언제나 상사람들을 억누르고 부리기만 하던 양반들이 나라를 생각하고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다. 한문을 진서라 하고 우리 말을 언문이라 하는 사람들 머리 속엔 오직 '대국'인 중국만 보일 뿐, 나라와 백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은 그대로 이어져서 일본 식민지 때는 일본말을 쓰는 '친일파'가 큰소리쳤고 해방 뒤에는 미국말을 쓰는 사람들이 큰소리를 친다. 우리 말을 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뒷전에서 한숨만 쉬고 있으니 나라가 제대로 힘을 쓸 길이 없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 것은 보잘것없는 것이고 일본 것이나 서양 것은 매우 훌륭한 것이라는 붙박힌 생각에 얽매어 있다. 이 몹쓸 생각을 씻어 내지 않고는 우리 겨레가 누리 가운데 떳떳이 나설 수가 없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길은 하나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한자말과 일본말과 서양말을 버리고 우리 말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다. 남의 말을 쓰면서 우리 것을 깔보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 겨레와 우리 나라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17.한문글자를 쓰면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을 줄 모르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런데, 한문글자는 모든 글자 가운데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글자이다. 쓰기도 어렵고 알아보기도 힘들다. 일본 사람들이 한문글자를 섞어 쓰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지만 책 읽는 것은 버릇이다. 중국 사람 가운데는 제 이름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문글자을 섞어 쓰면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글자를 모르니 무슨 재주로 책을 읽을 것인가? 또한 읽지 못하는 사람이 글을 쓴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그래서, 편지를 한 장 쓰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한다. 한글만 쓰면 저절로 풀릴 일을 일부러 어렵게 하는 것은 참으로 바보같은 짓거리다. 한자말이 아니라도 우리 말이 얼마든지 있으니 굳이 한자말을 쓸 까닭이 없다.
 

18.한문글자는 우리 글자살이에 함께 쓸 수 없다.
 

한문글자를 배우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쓰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배우고 싶은 사람만 배우고 쓰고 싶은 사람만 쓰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겨레가 다 배울 까닭도 없고 억지로 가르칠 일도 아니다. 나날살이에서 두루 쓰는 말과 글에선 어떤 핑계로도 쓸 수 없다. 한문을 학문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나 한문이 아니면 아니 되는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만 배우고 써야 한다.

한문글자나 한자말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두루 쓰는 글자도 아니고 두루 쓰는 말도 아니다. 한문글자를 우리 글 속에 섞어 쓴다고 일본이나 중국 사람이 우리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자말을 섞어 쓴다고 필리핀 사람이나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우리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자말과 한문글자를 쓴다고 일본 책을 읽을 수 있고 중국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로표지판'이나 '알림판'에 한문글자를 몇 자 덧붙여 썼다고 동양 여러 나라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아무 쓸모 없는 글자이다. 게다가, 요즘 말하는 '상용한자'를 배웠다고 옛 한문 고전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한자말과 전통 문화는 아무 이음고리도 없다. 한문글자는 우리 글자살이에 함께 쓸 수 없다.